본문 바로가기
이슈매거진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피카소의 뮤즈 마리 테레즈

by 원탁의기사 2021. 5. 14.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카소(1881∼1973)의 천재 화가의 110여점의 작품 전시 한국 전시회가 개최중이다. 

 

 

피카소의 뮤즈 마리 테레즈의 초상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에게는 그의 대표적 작품을 탄생케 한 여러 뮤즈가 있었다.
오데트, 제르메인, 마델레인, 페르낭드 올리비에, 에바 구델, 올가 코크로바(결혼), 마리 테레즈 발테르, 도라 마르, 프랑수아즈 질로, 제노비에브 라포르트, 재클린 로케(결혼).
이들 11명은 공식적으로 피카소와 사랑한 여자들이다.
스쳐간 여자들을 포함하면 100명이 넘을 것이라고도 한다.
피카소의 여자들을 이야기할 때 첫 손에 꼽히는 이가 마리 테레즈 발테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파블로 피카소(1881~1973) 탄생 140주년 특별전은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품 110여점으로 구성된 ‘블록버스터’ 전시다.

입체주의 탄생부터 말년의 작품까지 피카소 예술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피카소의 이번 전시회가 화제가 된 이유는 따로 있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전시되는 ‘한국에서의 학살’ 때문이다.

2m에 달하는 화폭 오른편에 중세 기사처럼 철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6명의 군인이 총칼을 겨누고 있다.

폭력이 향하는 왼편에는 벌거벗은 여성과 아이 8명이 있다.

겁에 질린 아이를 숨기는 임신부부터 코앞에 닥친 죽음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아이까지 공포에 질린 사람들과 군인들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은 피카소가 1951년 1월18일 완성해 그해 5월 프랑스 파리 ‘살롱 드 메’전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전에도 국내 전시가 추진됐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의 반미 선전용 그림이었던 데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개입한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이 창작 배경이라는 설 때문이었으며 뉴스에서도 여러번 보도가 된적이 있었다.

1980년대까지도 반입 금지 예술품 목록에 올랐다.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 화가이다. 그는 파리에서 그 특유의 입체파 예술혼을 키웠다. 자유분방한 도시 파리에서 피카소는 63세인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인간 얼굴을 한 공산주의’라는 슬로건으로 프랑스의 많은 지식인들을 끌어들였다. 자유분방한 피카소도 ‘계급 없고, 소외되지 않는 공산주의’이론에 현혹되어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특히 의회주의를 통한 민주적 방식의 공산 정권의 수립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프랑스 공산당은 1970년대 약 20%의 지지를 얻었으나 지금은 쇠퇴일로에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피카소가 그린 폭 2m의 ‘한국에서의 학살’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피카소는 6·25 전쟁 이듬해 1951년 이 작품을 완성했다. 프랑스 공산당이 당원인 피카소에 의뢰하여 그린 대작이다. 1950년 한국 전쟁은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파견되고 중공군이 개입되어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이 그림은 총칼을 든 군인들이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 4명과 어린이를 조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약한 여성과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발가벗겨 조준하는 모습은 대단히 끔찍하다. 공산당은 그에게 미군의 전쟁 횡포를 이미지화한 그림을 요구했지만 그것이 드러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북한에서는 피카소의 이 그림을 미군의 만행이라고 선전한바 있다. 북한 당국은 북한 인민군의 양민학살은 없었다고 강변하면서 이 그림이 미군의 황해도 신천 3만명 양민 학살 사건을 상징한다고 선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미군의 학살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평가한다.

남루한 과거를 지나 오늘날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읽는 것은 ‘반전’ 메시지다. 작품 구도는 피카소가 존경하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3일’(1814)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군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양민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고발한 작품이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에두아르 마네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8~1869)을 그렸고, 피카소도 전쟁의 살상 행위에 대한 고발을 비슷한 구도로 담아냈다. 사실 선전화치고는 구체성이 떨어지는 데다, 완성도가 탁월한 수준도 아니어서 해외에선 크게 주목받은 작품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게르니카’(1937),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시체구덩이’(1944~1946)에 이은 피카소의 3대 반전 작품으로 꼽힌다.

 

피카소 전시회 포토존 

 

피카소

INTO THE MYTH

탄생 140주년 특별전

2021. 5. 1 - 8. 29 (월요일 휴관)

10시 - 19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