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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매거진

벌거벗은 세계사 강사 출연진 tvN 편성표

by 원탁의기사 2021. 7. 16.

 

전 세계 곳곳을 온택트로 둘러보며 각 나라의 명소를 살펴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역사를 파헤치는 프로그램

제작 김형오,이윤호(연출)

출연진 은지원,규현,혜성

 

 

벌거벗은 세계사' 하차한 설민석 대타로 누가 나올까 궁금했었는데,매 회마다 강연진이 바뀌면서 더 유익해지고 재밌어졌네요.

 

장항석 교수

소속 강남세브란스병원 의사, 연세대학교교수

학력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경력2011.03.~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페스트 편 네 번째 여행!

유럽 인구 3분의 1을 죽인 연쇄 살인마. '페스트' 왜 지금. 우리는 페스트를 알아야 하는가? 현재 우리 상황과 비슷한 중세 유럽의 전염병 대응법! “과거의 모습을 통해 현재를 대비하라!

최태성 교사

EBSi강사, 이투스교육 강사 최태성/2012.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

핵폭탄 편 다섯 번째 여행!

일본제국 패망과 민족 분단 속 숨겨진 비밀 '핵폭탄' 핵폭탄 투하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미국은 왜 두발의 핵폭탄을 투하했을까? 그리고 일본제국의 항복 선언 이후 한반도에 그어진 분단의 상징, 38도선에는 슬픈 비밀이 숨겨져 있다

 

조관희 교수

상명대 중어중문과 조관희 교수

 

진시황 편 여섯 번째 여행!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을 달성한 '진시황제' ⠀ 중국 최초로 ‘황제’라 불린 진시황제! 그는 왜 폭군이 되었을까? 불로불사를 꿈꾼 진시황제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그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본다

조 교수는 "진시황제가 정말로 어떻게 천하를 통일하고 강력한 왕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다"라며 "황제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 진시황제인 것이다. 요즘말로는 신조어를 만든 것"이라고 말해 시선을 집중시켰답니다.

아울러 진시황릉에 대해 "멀리서 보면 언덕이나 산처럼 보이는 것이다. 용인 놀이공원의 세 배 정도의 넓이인 것이다. 병마용갱 중에 가장 큰 규모"라며 "70년대 초반 농부가 우물을 파려고 하다가 발견했던 상황이다. 지금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실제로 보면 압도적이라는 말을 실감한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답니다.

"이런 걸 만들 수 있었던 왕이 얼마나 큰 권력을 가졌을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차이나'라는 국명도 사실 진나라에서 온 거다. 진이라는 국호를 차이나로 바꿔 부른 것"이라고 말해 흥미를 더했답니다.

조 교수는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 비결로 뛰어난 인재 등용과 법치주의, 지리적 이점을 꼽았답니다. 조 교수는 "진시황제는 이사가 올린 계책을 받아들여 시행을 하게 되는 마음이다. 계책이라는 건 황금으로 설득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는 거다. 또 여러 나라를 이간질 시킨다. 장수와 병사들을 파견해서 각개 격파를 해 나간 것이다. 외부 인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진시황제 만의 포용력과 개방성 덕분이었던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답니다.

아울러 "엄격한 법을 시행했다. 상을 줄 건 주고 벌을 줄 땐 주는 것이다. 기강과 규율을 엄격히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나라는 실크로드의 교통로였다. 지리적으로 외부 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곳이었다"라며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성했던 진시황제의 나이는 불과 39살이었던 상황이다"라고 전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유현준 교수

소속 홍익대학교교수, 스페이스컨설팅그룹대표 건축가, 유현준건축사무소대표 건축가

학력 하더브 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 석사 졸업

경력스페이스컨설팅그룹 대표 건축가

수상2018. 독일 디자인상

 

로마 건축사 편 일곱 번째 여행!

건축물에 숨겨진 권력의 비밀! '로마 건축사' ⠀ 유현준 교수와 함께 떠나는 건축물로 알아보는 로마의 비밀! 통치자들이 보여준 권력의 상징, 건축물부터! 넓은 제국을 다스릴 수 있었던 특별한 도시 시스템 비밀까지

최태성 교사

청일전쟁 편‘여덟 번째 여행!

조선에서 시작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 '청일전쟁' ⠀ 동아시아의 패권을 바꾸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문을 연 청일전쟁! 청나라와 일본의 정면충돌, 그 중심에는 조선이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뒤집은 청일전쟁, 세계사 속에 감춰진 가슴 아픈 우리 역사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김헌 교수

 

서울대학교 서양 고전학자 김헌 교수

알렉산드로스 대왕 편‘아홉 번째 여행!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 태양 왕 루이 14세! 나폴레옹! 카르타고 한니발 장군! 로마의 카이사르! 역사 속 인물들이 가장 존경했던 명장! 그리스의 작은 도시 국가 마케도니아에서 시작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의 영토를 차지한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

최태성 교사

열 번째 여행!

20세기 최초의 세계전쟁! '러일전쟁' ⠀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며 대륙으로 뻗어 나가려 한 일본 동아시아로 세력을 팽창하기 위해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한 러시아 두 나라의 충돌은 곧 세계의 주목을 받는 러일전쟁으로 이어진다! ⠀ 조선에 러시아 세력이 커지자 한반도 침탈에 위기를 느낀 일본!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조정을 압박하는데... ⠀ 당시 최강대국 영국과 손을 맞잡은 일본 이에 맞서는 유럽의 거인 러시아 한반도에서 시작해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열강들의 패권 전쟁! 그 진실이 궁금하다면

 

열한 번째 여행

러일전쟁 열한 번째 여행!

20세기 최초의 세계전쟁! '러일전쟁' 제2탄! 전 세계 열강들이 주목한 20세기 최초의 세계전쟁

 

김헌 교수

열두 번째 여행! <트로이아 전쟁> 편 - 김헌 교수

열세 번째 여행! <네로 황제> 편 - 김헌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부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스트라스부르대학교 대학원 서양 고전학 박사

 

조한욱 교수

열네 번째 여행! <마리 앙투아네트> 편 - 조한욱 교수

 

現)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 석사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박사

김대보 교수

열다섯 번째 여행! <나폴레옹> 편 - 김대보 교수

 

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학사/석사

프랑스 파리1대학 팡테옹-소르본, 프랑스 혁명사 연구소(IHRF) 역사학 박사

 

김봉중 교수

열여섯 번째 여행! <링컨> 편 - 김봉중 교수

 

)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 한국미국사학회 회장

) 미국 샌디에고 시티 대학교 사학과 교수

) 미국 조지아 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전남대학교 사학과 석사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교 미국사 석사

미국 털리도 대학교 미국사 박사

윤영휘 교수

열일곱 번째 여행! <엘리자베스 1세> 편 - 윤영휘 교수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 석사

영국 워릭 대학교 사학과 철학 박사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열일곱 번째 여행으로 영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시간을 갖는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가계도 잉글랜드의 여왕 Elizabeth I 잉글랜드의 여왕(재위 1558∼1603)으로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 군주 가계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가계도 잉글랜드의 여왕  Elizabeth I 잉글랜드의 여왕(재위 1558∼1603)으로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국교의 확립을 꾀하고 종교적 통일을 추진하였으며 화폐제도를 통일하고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 빈민구제법에 의하여 토지를 잃은 농민의 무산화를 방지하였고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다.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녀는 통일령을 선포하여 국교회가 주도하는 종교 질서를 확립하여 신교 국가의 본격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일련의 입법을 통해 산업화와 가격혁명에 따른 부정적 결과들을 조절하려는 대응책을 추진했고, 잉글랜드 사회정책의 초석이 되는 구빈법을 제정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7세 때 처음 시도되었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도 재개하였다. 그녀는 가톨릭의 수호자인 에스파냐와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개신교를 구하고, 잉글랜드가 대양으로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치세 말기 특허를 주어 동인도 회사의 교역활동을 도왔다.

엘리자베스 1세


출생-사망
1533.9.7 ~ 1603.3.24


왕가
튜더 왕가 

가족관계
부친 : 헨리 8세(Henry VIII)
모친 : 앤 볼린(Anne Boleyn, 1533년 결혼, 1536년 처형)


계보
전임자 : 메리 1세(Mary Ⅰ, 재위 1553년 ~ 1558년)
후임자 : 제임스 1세(James VI of Scotland, 재위 1603년 ~ 1625년)


국적/왕조
잉글랜드


재위기간
1558년∼1603년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잉글랜드 그리니치


1533년 9월 7일 잉글랜드 런던 근처 그리니치(Greenwich)에서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간통과 반역죄로 참수된 뒤 궁정의 복잡한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왕위 계승권이 박탈되었다. 

 

또한 이복 언니 메리 1세의 가톨릭 복귀 정책이 불만을 사게 되어 와이어트 반란으로까지 확대되었을 때, 그녀도 반란 가담의 혐의를 받아 런던탑에 유폐(1554)되는 등 다난한 소녀시절을 보냈다. 

석방된 뒤 인문주의자 R.어스컴에게 그리스·라틴의 고전을 배우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의 외국어를 공부하여 역사·음악·신학에 능통하였다. 메리 1세가 죽자 뒤를 이어 25세에 즉위하였으며, 에스파냐 왕 펠리프의 구혼을 받았으나 즉위하면서 이를 거절하였다. 그녀의 오랜 치세는 영국의 절대주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므로 국민으로부터 ‘훌륭한 여왕 베스’라고 불리며 경애의 대상이 되었다.

종교정책에서 전 여왕 메리 1세의 가톨릭적 반동에 의해서 신구 양파의 항쟁이 격화되었을 때, 여왕은 수장령(首長令)과 통일령(1558)을 부활하여 국왕을 종교상의 최고 권위로서 인정받도록 하였다.

 

동시에 전국민에게 국교회(國敎會)의 의식과 기도서를 강제로 지키게 함으로써 국교의 확립을 꾀하고 가톨릭과 퓨리턴을 억압하여 종교적 통일을 추진하였다. 의회에 대한 행정은 강제와 양보의 양면작전으로 조종하여 권한을 축소시켰고, 45년간의 치세 중에 의회를 열지 않은 횟수는 불과 10회였다. 

 

추밀원(樞密院) 중심의 정치를 폈고, 정치범을 위한 성실청(星室廳) 외에도 종교 범을 위하여 특설 고등법원을 설치하였다. W. 세실, 월싱엄 등을 중용하고 베이컨, T. 그레셤 등의 진언을 받아들였으며, 지방에서 명망 있는 사람을 치안판사로 임명하여 지방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또한 그레셤의 제안을 받아들여 화폐의 개주(改鑄)를 단행하고, 금과 은의 가치를 일정하게 하여 화폐제도를 통일하고, 물가의 앙등을 억제하였다. 또 도제조례(徒弟條例, 1563)에 의하여 노동시간·임금 등을 정하였으며, 빈민구제법(1601)에 의하여 인클로저 운동과 수도원 해산으로 인하여 토지를 잃은 농민의 무산화(無産化)를 방지하였다.

 

유리·제당·제분·금속·광산 등 각종 공업 분야에 독점권을 부여, 이의 보호육성을 도모하는 등 중상주의(重商主義)정책을 채용하였다. 특히 역점을 둔 공업, 이를테면 모직물 공업의 발전은 상인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게 하였으며, ‘모험 상인조합(merchant adventurers)’에게 독점적인 면허장을 교부하여 보호하였다. 또한 회사 조직에 의한 많은 무역 단체에게 특허장을 교부하여 조직함으로써 무역의 확대와 해외 진출을 도모하였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의 설립(1600)과, 월터 러리에 의한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 식민지의 기초가 확립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에스파냐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펠리프 2세의 구혼을 거절하는 한편 네덜란드의 독립을 도왔으며, 에스파냐의 미국과의 무역선을 F.드레이크와 J. 호킨스에게 명령하여 습격함으로써 에스파냐 선박의 해상 지배를 위협하였다. 펠리프는 그녀를 폐위시키고 가톨릭파의 메리 스튜어트를 옹립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메리 스튜어트가 처형당해 양국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에스파냐의 해상지배는 무적함대의 패배로 큰 타격을 받았으나, 영국인은 국민적 자각이 높아져서 해상 발전의 길이 트이게 되었다. 여왕의 치세 중 영국은 한 섬나라에서 대해 상국으로 성장할 기초가 이루어졌고 ‘명랑한 잉글랜드’가 이루어졌으며, 문화면에서도 영국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국민 문학의 황금시대가 도래하여 셰익스피어·스펜서·베이컨 등의 학자·문인이 속출하였다. 

이리하여 여왕은 ‘선녀여왕’으로서 온갖 영광의 상징이 되었고, 영국의 절대주의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1590년 이후부터는 퇴색되어 ‘반독점 논쟁’에서는 하원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그녀는 처녀여왕으로서 노쇠하여 죽었고, 처형된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인 제임스 1세가 후계자로 즉위하였다.

1558.1.15 엘리자베스 1세가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다
대관식이 거행된 1월 15일은 매섭게 추웠다. 스물다섯의 엘리자베스는 웨스터 민스터 홀에서 걸어 나왔다. 흰 담비 털가죽으로 안을 댄 실크 망토, 에베네 치아산 황금과 진주가 달린 진홍색 벨벳 모자로 잔뜩 치장한 채였다. 교회들은 한꺼번에 종을 울렸고 오르간, 트럼펫 소리와 수 만개 촛불이 성스럽고 화려하게 넘쳐흘렀다.

헨리 8세와 '천일의 앤'사이에 태어난 명민한 공주
영국에서 16세기는 해외 원정에 돈을 쏟아 붓던 탐험과 모험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최초로 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했던 월터 롤리 경과 세계를 항해했던 프렌시스 드레이크 경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처럼 원정에 나선 결과,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여왕을 기리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 북부를 '버지니아(처녀의 땅)'라 명명할 수도 있었다. 이 여왕이 바로 영국의 16세기를 빛낸 엘리자베스 1세였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낳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

날씬한 몸매이면서도 위엄에 가득 찬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앤은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의 시녀였는데, 엘리자베스를 낳은 후 1536년 5월 19일 참수당했다. 간통을 스물두 차례나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헨리 8세가 참수를 지시했다. 이어,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헨리 8세가 엘리자베스의 교육에까지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여섯 살 때부터 군주로서의 자질을 개발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학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며 그녀 스스로도 ‘그리스, 로마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라틴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웨일스어를 자유롭게 쓰고 읽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매일 세 시간씩 역사책을 읽었다.

엘리자베스에게는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던 배다른 동생 에드워드가 있었는데, 헨리 8세의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가 낳은 아이였다. 그러나 병약한 에드워드가 열다섯 살에 죽어버리자 역시 배다른 언니 메리가 여왕이 된다. 메리는 헨리8세와 캐서린 왕비 사이에 태어났으며, 신앙심에 극도로 의존한 결과 신교도를 마구 탄압해 '블러디 메리(피의 메리)'라 불렸다. 메리는 엘리자베스가 신교를 믿는 게 아닌가 의심해 석 달간 런던탑에 가둬버린다. 엘리자베스는 런던탑에서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는데, 전쟁에 휘말려들지 않으려 시골에 콕 박혀 지낸다.

"평생 처녀로 살다 간 왕이라는 비석만 세울 수 있다면 만족한다"
엘리자베스의 은둔 생활을 끝내게 한 것이 메리 여왕의 서거였다. 다음 왕위의 승계자로 지목된 그녀는 즉위식 날 두 가지 영국 왕의 징표를 얻게 된다.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는 백성들과의 결합을 상징하는 반지를 꼈고, 무게가 3킬로그램에 이른다는 잉글랜드 왕실 왕관을 썼다. 그녀는 당면한 두 가지 안건을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바로 결혼과 종교. 첫 번째 문제인 결혼에 관한 그녀의 결론은 이랬다.

“한 시대를 통치했던 여왕이 평생 처녀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는 비석을 세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녀는 처녀 여왕의 전설을 만들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으며 그 이유 때문에라도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대관 이후 25년 간 후계자와 관련해 여왕의 결혼 문제는 끝없는 추론과 억측 속에 온갖 기기묘묘한 소문을 낳았다. 이미 사생아를 낳아서 기른다거나 혹은 난잡한 사생활을 즐긴다거나 청혼 받는 게 취미라거나 몸이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거나 혹은 자궁이 기형적인 안드로겐 내성 증후군 환자라는 등의 소문이었다. 그녀는 당대의 ‘훈남’ 로버트 더들리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더들리의 아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에는 특히 소문이 극성을 부렸다. 여왕이 추악한 살인을 못 본 척하고 더들리와 결혼해 왕국과 스스로의 명예를 실추시키려 한다는 소문이었다.

종교에 관한 한 그녀는 언니와 달리 광신도가 아니었고 신교 구교 가리지 않고 광신적 행위라면 혐오했다. 그녀는 평생 인간의 양심은 타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 마음 깊숙한 곳과 비밀스런 생각을 억지로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쨌든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개신교가 잉글랜드 국교가 되었고 그때부터 종교적인 탄압은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인 필요에서 이뤄졌다.

 

임승휘 교수

열여덟 번째 여행! <루이 14세> 편 - 임승휘 교수

) 선문대학교 역사·영상 콘텐츠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학사

프랑스 파리 4대학 소르본 석사·박사

이번 편은 임승휘교수님과 떠나는 프랑스 문명의 발상지 일드프랑스

최장기 집권 압도적 권력을 휘둘렀던 왕 루이14세에 대한 여행이다.

프랑스에서 온 올리비아는 샤토성을 추천했다. 요즘의 셀럽들이 결혼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태양왕 루이 14세.

흰색 담비털로 만들어진 망토에 파란 비단 위에 그려진 프랑스의 상징인 백합이 그려져 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은 출처불명이지만 어쨌든 루이14세는 절대권력의 상징과도 같다. 루이왕은 태양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누구보다도 큰 권력을 가지리라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루이 14세는 1638년에 태어나 77년을 산다. 당시의 평균연령이 25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평균보다 3배 이상을 산 인물이다.

루이왕은 파리 서쪽 외곽에서 태어났다. 성은 부르봉, 중간이름은 디외도네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루이 13세가 결혼한지 23년 만에 후사를 보았기 때문에 미들네임을 신이 준 선물로 본 것이다. 워낙 늦게 태어나서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도 있었다.

왕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친부가 루이 13세가 아니라는 소문이 돈 이유는 루이13세가 성경험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 애첩들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왕비에게 버킹검 공작이나 대리부가 있었다는 설도 있었다.

이 이야기가 소설 <철가면>의 소재가 된다. 가상의 인물로만 생각하는 철가면은 실제로 가면을 쓴 죄수가 있었다. 바스티유 감옥에 가면쓴 죄수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철가면을 쓴 죄수가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귀하게 태어난 루이 14세의 나이 5살에 왕이 죽고 루이 14세가 즉위한다. 어린 왕을 대신해 루이 13세의 왕비가 섭정을 한다. 그로부터 5년 뒤 인생을 뒤흔든 프롱드의 난이 일어난다.

프롱드는 새총이라는 뜻인데 섭정 중인 마자랭의 창문에 새총을 쏜 반란이다. 1649년 1월에 왕비와 재상 마자랭이 파리를 탈출한다. 추운 겨울에 난방도 없는 곳에서 자야 했다. 2년 뒤 삼촌이 제2차 프롱드의 난에 참여하면서 세력을 키운다. 왕비는 또 탈출을 시도한다. 도망도 가기 전에 성난 민중들이 쳐들어오자 왕비는 루이에게 잠든 척을 하라고 한다. 그때의 수치심과 치욕은 트라우마가 된다.

5년간의 반란이 지쳤을때 시민들은 왕에게 돌아와 달라고 요구하고 루이 14세는 1652년 승리자가 되어 파리로 입성한다. 루이 14세에게는 끔찍한 악몽의 도시로 파리를 인식하게 된다. 언제든지 돌아설 것이라는 귀족들, 모든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리라고 다짐한다.

자신의 귀환을 널리 알리고자 한 루이14세. 17세기 중반 프랑스의 인구는 2천만 명 정도였고, 말을 타고 프랑스를 횡단하려면 22일이 걸리기 때문에 루이는 발레극 '밤의 발레'를 통해 자신을 알리려고 했다. 27년간 매일 두 시간씩 발레 연습을 한 루이는 자신이 직접 발레를 한다.

자신을 태양의 신 아폴론으로 분한다. 영화 <왕의 춤>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반란에 참여했던 귀족들을 발레극에서 무릎을 꿇는 역할을 맡기며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화려하게 태양의 관을 쓰고 등장하는 젊은 왕에게 시민들은 위대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로마 황제로 분장한 모습도 보이며 프롱드파들을 다시 무릎꿇게 한다.

태양과 동일시하며 자신을 부각시킨 루이는 마제랭이 사망하자 드디어 명실공히 왕이 된다. 더 이상 재상을 두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대, 충성하는 관료집단, 막강한 재정을 필요로 했다. 마제랭의 사후 국고는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재정 담당 니콜라 푸케에게 국가 재정이 흘러들어간다는 말이 들려 온다.

푸케가 자신의 성에서 파티를 개최한다. 푸케의 성은 루브르궁보다 더 화려했다. 국고는 비었는데 부패한 귀족들은 화려하게 산 것이다. 국고횡령혐의로 체포하고 반역죄로 가둔다. 이때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삼총사>의 다르타냥이다. 소설과 영화속 우정의 아이콘 삼총사는 실존인물들이다.

푸케의 체포는 다른 귀족들에게 충격을 준다. 왕국에서 가장 위험한 귀족들을 엄벌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절대적인 지배권을 갖고자 했던 루이는 왕권강화를 위해서 귀족들에게 귀족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더이상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귀족들은 모든 재산과 출생 족보 등을 모두 작성해서 제출한다.

귀족을 공작, 후작, 남작의 순으로 서열화한다. 귀족들의 경쟁을 교모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립한다. 귀족이라는 신분은 바로 '나(루이14세)'에게서 나온다는 걸 알림으로써 귀족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든다.

귀족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계획의 최종단계는 그리스 태양신이 사는 곳을 표방하며 루이 14세가 사는 작은 우주, 바로 베르사유 궁전을 만든 것이다. 태양왕 아폴론이 장식된 입구와 그리스 신화들과 바로크식 정원, 뱃놀이를 하던 운하 등이 있다. 태양빛으로 물든 신전과 같은 곳.

베르사유 최고의 절정은 거울의 방이다. 루이14세의 친정 17년을 나타내는 17개의 대형거울이 압권이다. 거주공간은 아니고 외국대사들의 접견실 또는 신하들이 대기하던 공간으로 쓰였다.

 

베르사유궁전은 전체 둘레가 44km, 면적은 여의도의 3배, 성문만 35개, 분수는 200개, 방이 450개가 있다.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루이의 뜻에 따라 철저하게 측정해서 만든 대칭의 구조가 철저한 건축물이다.

라토나 분수 밑으로 내려오면 아폴론이 황금마차를 탄 채 아침을 맞는 조각상이다.

베르사유는 원래 늪이었는데 20km떨어진 곳에서 물을 대기 위해서 펌프를 만든다. 자연까지 지배하고자 한 루이 14세.

대칭이 완벽한 궁전의 정 가운데 2층에 루이14세의 침실이 있었다. 이 위치는 자연이 아폴론에게 복종하듯 프랑스는 왕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르사유 궁 앞에는 세 개로 뻗어나가는 계획도시가 건립되고 모든 시민들이 보고싶어 하는 귀감으로써의 왕이 된다. 유럽의 다른 왕들도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게 된다.

루이 14세가 파리가 아닌 베르사유에 궁전을 지은 이유는 어린 시절의 악몽이 있는 파리를 싫어해 파리에 머무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가장 통치하기 힘든 부류가 귀족인데, 귀족은 태어날 때부터 반란을 계획하는데 이 귀족들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베르사유로 끌어 모은다.

'귀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어라'

놀거리, 볼거리, 축제와 오락, 곤돌라 등 이벤트로 가득 채운 베르사유를 만들어 귀족들을 모이게 한다. 이 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의무)였다. 지금은 의미가 많이 변한 용어가 되었다. #노블리스오블리주 #에티켓

왕에게 복종하면 경제적인 혜택을 주며 당근을 제시했다. 전국에 있는 귀족들이 베르사유로 몰려 온다.

베르사유의 운영체계는 바로 에티켓이었다. 황당한 에티켓이 많았는데 국왕은 모든 일과가 연극과도 같았다. 출입하는 귀족들을 서열화하여 고유한 에티켓을 부여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조차 특권으로 이용한다.

루이 14세는 에티켓을 정하기도 하고 깨기도 하면서 귀족들을 순종하게 만든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식사모습을 앉아서 보는 귀족과 서서 보는 귀족들이 있는 철저한 계급으로 귀족들을 관리했다.

왕의 방을 들어갈 때는 문을 새끼손톱으로 긁어서 신호를 보내야 했다.

베르사유에서 쫓겨난다는 건 죽음만도 못할 정도였다. 지위가 강등된 귀족은 앉아 있을 수 없으며 엄청난 모욕을 견뎌야 했다. 귀족들의 심리까지 이용해서 쥐스토코르라고 불리는 몸에 딱 붙는 옷인 궁중예복을 입도록 했다. 이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매년 연말에 명단 40명을 발표한다. 이 옷 한 벌을 입고자 하는 귀족들은 온순한 양으로 탈바꿈되었다.

마흘리의 성에 가끔 식사를 했는데 함께 갈 수 있는 귀족 50명을 바로 전날 뽑았다. 하루하루가 이벤트여서 재미있었을 거라는 은지원. ㅎㅎㅎ 이벤트 자체로는 즐거운 일이지만 국민을 조종하려했던 리더들이 이후로도 여럿 나타나 권력자가 행하는 이벤트는 입안을 깔깔하게 만든다.

에티켓=차별=시기와 질투=경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이는 규칙을 만든 국왕에 대한 절대 복종을 하게 된다. 결국 국왕이 삶의 질을 결정하게 한 것이다. 귀족들은 왕에게 가까이만 갈 수 있다면 모든 직책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하물며 변기담당자들(귀족이었음)조차도 좋은 직책이라고 생각했다. 왕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수록 귀족들은 좋은 자리로 여겼다. 변기담당자는 사고 팔 수 있는 직책이었으며 높은 가격에 판매를 했다. 직책을 많이 만들수록 돈은 많이 들어왔다.

루이14세는 사치와 복종 뿐만 아니라 감시정책을 통해 귀족들을 관리했다.

루이14세는 프랑스를 넘어 전 유럽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37년 동안 전쟁을 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다. 1731년 레오폴드1세가 즉위한 입헌군주제 국가다. 루이14세는 벨기에를 침략해 전쟁을 벌이게 된다.

프랑스는 남자만 왕이 될 수 있었으나 스페인은 여성도 왕이 될 수 있었다. 스페인이 계약금 불이행으로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던 벨기에를 친 것이다. 4년 후 스페인령이었던 네덜란드를 다시 공격한다.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웃국가들이 동맹을 맺는다.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전쟁이 발발해 9년간 이어진다.

카를로스2세가 타계하면서 루이14세의 손자를 왕으로 지명하면서 스페인에서도 부르봉왕가가 된다.

37년간 전쟁을 하다보면 재정이 궁핍해 진다. 최대 65만명의 병력을 유지하려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필요해 세금이 높아지고 그것도 부족해 관직을 팔거나 징세 청부업자들을 경매에 부친다. 청부업자들은 통상세금의 2~3배를 걷는다. 전유럽을 휩쓴 이상기온으로 결국 피폐해진 민중들이 빵을 구걸하게 된다.

구교와 신교의 종교전쟁이 30년간 지속된다. 루이14세의 할아버지가 이 전쟁을 종식시키면서 낭트칙령을 선포했는데 루이 14세는 픙텐블로 칙령을 선포한다. 신교도의 힘을 빼기 위해 300번 이상의 시도를 한다. 개종을 거부하는 신교도 집에 군대를 머물게 한다. 약탈, 고문, 부녀자 강간, 살인까지 감행한다. 신교도를 박해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태워버리고 부대를 다른 마을로 그대로 옮겨와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전쟁과 종교박해가 지속되면서 태양왕에 대한 이미지는 점차 실추되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갖는다. 소 매독, 홍역, 피부병... 등등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를 했다.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는데 과식이 병의 원인이었다. 사후 의사들이 확인한 결과 위가 보통 사람의 2배 정도 컸다고 한다.

치루수술을 해야 할 당시 의사는 경험이 전무했던 지라 치루환자 75명을 모아서 연습을 한다. 루이14세의 수술은 성공한다. 통풍을 앓고 있던 루이14세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간다. 태양이 지듯이 프랑스의 왕도 서서히 진다. 말기 2년 동안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왕세자가 천연두에 걸려 사흘만에 사망하고, 1년 손자, 그리고 증손자까지 연이어 사망한다. 이 여파로 루이14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고 다리가 검게 변해가는 증상을 겪고 다르를 잘라달라고 하지만 결국 사망하고야 만다.

그는 증손주에게 사치와 전쟁을 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루이 15세는 엄청난 빚과 전쟁을 물려 받았을 뿐이었고, 결국 루이 16세에 이르러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야 만다.

루이 14세의 풍자화를 보면 그가 태양왕이나 절대권력자가 아니라 초라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류한수 교수

열아홉 번째 여행! <냉전> 편 - 류한수 교수

)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한국러시아사학회 연구이사

) 상명대학교 동북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상명대학교 박물관 관장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학사/석사

영국 에식스대학 역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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